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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을 읽다 보니, 또하나 고정 관념이 깨졌습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인데도,
지금껏 발상 전환이 잘 되지를 않았는데, 이번에 확실히 선입견을 뜯어 고칠 수 있었 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흔히 '백의의 천사' 이미지로 알려진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 사실은 훨씬 더 복잡하고 흥미로운 인물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단순히 생각해도, 귀족 집안의 귀한 따님이라는 신분을 포기하고 험한 전쟁터로 뛰어 들어 힘든 일을 자처한 사람이 그저 성격좋고 착하기만 한 젊은 아가씨일 턱이 없죠. 뭔가 나름대로 소신과 주관이 뚜렷하고, 완고함과 추진력도 갖추어야 가능한 일일 것 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주입된 나이팅게일의 이미지는, 고풍스런 하얀 간호복 차림으로 손엔 램프를 들고 상냥한 미소를 지은 채 한밤중에 병상을 돌아다니면서 병사들을 돌보는 젊고 청순한 아가씨입니다. 하지만 저건 말도 안되는 것이, 우선 나이팅게일은 크리 미아 전쟁에서 간호 책임자로 활약할 때 벌써 나이가 35세였습니다. 거기다 그녀는 그저 착하고 웃길 좋아하는 청순한 아가씨가 아니라, 스물이 되기 전부터 공중 보건 과 군사 행정에 깊은 관심을 갖고 연구와 실습을 거듭해 온 노련한 행정 전문가였죠. 나이팅게일은 당시 영국 보건 행정 분야에서, 실무와 이론을 겸비한 최고의 전문가 였습니다. 나이팅게일의 성격은 청순하고 가련하기는 커녕, 굉장히 권위주의적이고 신경질적인 데다가, 정치적으로 노련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당시 영국 귀족 정치가들은 전쟁터에 나간 사병들이 부상당해 죽건 말건 별로 신경도 쓰지 않고, 군대 보건 위생을 개선할 의도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 무심하고 고리타분한 귀족 정치가들과 멱살잡이만 안 했지, 정말 피터지게 싸우고 또 싸운 사람이 바로 나이팅게일이었다고 하는군요. 빨리 보내달라는 약품을 안 보내주면 쫓아가서 따지고, 기껏 도착한 약품을 절차상 문제가 남았다며 내주지를 않으니까 팔을 걷어붙이고 달려가서 자기가 상자를 확 잡아 뜯어 버리기도 하고, 멍청한 담당자들이 배에서 약품내리는 걸 잊어먹고 그냥 떠나버리니까 펄펄 뛰면서 따져 되찾아오기도 하는 등... 나이팅게일은 사실상 간호사로서 한가롭게 병상을 돌 여유가 그리 많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신 그녀가 한 일은, 오늘날까지 군사 보건 체제의 기반이 된, 현대적인 야전 병원 행정 체제를 혁신적으로 개혁한 일이죠. 즉, 나이팅게일은 간호사라기 보다는 행정 체제를 혁신한 창조적인 개혁 정치가였던 셈입니다. 그녀의 추진력과 완고함은 실로 엄청났으며, 지극히 영리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무지막지하게 권위주의적이었다고 하는군요. 크리미아 전쟁 때, 현지 수녀원장이 나이팅게일의 권한을 침해하려고 하자 그야말로 격분하여 펄펄 뛰며 본국 정부에 막 따지고 항의해 자기 권위가 한치의 손상도 입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 그녀의 심기를 잘못 건드렸다간, 그야말로 세상이 뒤집어지는 난리가 나는 거죠. 몇몇 고리타분한 정치가들이 나이팅게일을 꺾어보겠다고 덤벼들었다가 본전도 못 뽑았다고 합니다. 행정적 능력과 정치적 계산 모두에서 전혀 상대가 안되었거든요. 그러나 본국에서 그녀의 이미지는 어디까지나 '램프를 든 백의의 천사'였으며, 때문에 여론은 그녀를 거의 신성시하고 광적으로 떠받들었습니다. 나이팅게일은 그런 여론의 지지를 아주 교묘하게 이용하여 자신의 권위를 강화했고, 그 강화된 권위를 현대적인 공중 및 군사 보건 위생 체제 확립에 모조리 쏟아부었습니다. 크리미아 전쟁이 끝나고 개선 장군처럼 고국에 돌아온 나이팅게일은, 빅토리아 여왕과 면담을 통해 해박한 지식 과 날카로운 통찰력을 과시함으로써, 여론 뿐만 아니라 왕실의 절대적인 신망까지도 함께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명문 집안 출신이라는 막강한 배경에, 당대 최고의 정치적 재능, 그리고 여론의 절대적 지지와 왕실의 압도적 신망까지 더해지자, 공직을 맡을 수 없는 여자의 몸이라는 약점은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크리미아 전쟁이 끝난 후 거의 반세기 동안, 영국 정계는 사실상 나이팅게일의 압도적 지배하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크리미아 전쟁에서 지나치게 무리를 한 탓에, 그녀의 건강 상태는 오늘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처참한 상태였다고 하죠. 하지만 그녀는 일을 그만두고 쉬라는 주치의의 말 따위는 전혀 신경쓰지도 않고, 오히려 밤낮으로 거의 미친 듯이 일을 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그녀의 지시를 받는 남성 정치가들은 몸이 암만 아파도 통 쉴 수가 없죠. 다 죽어가는 여자도 밤낮으로 일하는데, 멀쩡한 남자들이 엄살 피운다고 당장 나이팅게일로부터 욕이 날아왔거든요. 한번 그녀의 비위를 거슬렀다가는, 그동안 아무리 충성을 다 바쳤다고 해도 당장 찬밥 신세가 되었다고 합니다. 나이팅게일의 영향력이 얼마나 막강했던지, 유럽의 왕족이나 귀족들조차도 명성을 듣고 한번 만나려 하면, 아랫층에서 예약해 놓고 기다려야 했다고 합니다. 인도 총독은 부임할 때 나이팅게일을 만나 인사를 하고 조언을 구하는 것이 당연시되었다고 하는군요. 권위, 재능, 업적, 인맥, 여론과 왕실의 지지 등 정치가로서 갖출 것은 모두 갖춘 나이팅게일은, 그후 죽을 때까지 자신의 대리인인 남성 정치가들에게 수많은 편지를 날림으로써 정계를 좌지우지하고, 고리타분하고 꽉 막힌 영국의 군사 보건 행정을 확실하게 개혁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녀만한 정치가가 아니었다면 도저히 불가능했을지도 모르겠군요. 결국... 나이팅게일은 백의의 천사라기 보다는,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최고 정치가 가운데 한사람이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막강한 권력과 과감한 추진력으로 남성 정치가들을 거의 부하처럼 부려가면서 배후 조종만으로 개혁을 성공시킨 건, 정말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죠. 나이팅게일 전기는 어린애들 보다는, 오늘날 정치가들이 차분히 읽고 연구해야만 할 것이라고 봅니다. PS) 실은, Emma 때문에 빅토리아 영국에 대한 책을 찾아 읽다가 발견한 내용이죠. (헐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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