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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보고 나면 기분 우울해지는 영화입니다. 저는 술도 담배도 하지 않습니다만,
영화를 보고 났더니 "에이, 이놈의 빌어먹을 세상, 돈없고 힘없는 놈들은 다 죽어야지!" 하면서, 쓸쓸하게 담배 한대 피우며 소주 한잔 하시는 분들의 심정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더군요. 영화를 못 만들었기 때문에 그러냐 하면, 결코 그렇지는 않습니다. 어떤 의미 에서는 꽤 잘 만들었기 때문에 그러한 우울하고 허무주의적인 정서가 잘 전해지는 면도 없지 않은 것 같네요. 물론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이른바 '헐리우드 블록 버스터 영화'에 비해 조금은 떨어져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괴물이 나와서 난동을 부리는 장면에서 다소 합성티가 나기도 하고, 괴물의 모습 자체도 종종 게임 그래픽을 보는 듯한 느낌이 나더군요. 구성 자체도 비교적 평이했고, 스토리도 비교적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그렇다면 대체 이 영화에서 주목해야 할 점이 무엇이냐 하면, 바로 신랄한 '사회에 대한 풍자' 입니다. 아니, 이 정도쯤 되면 풍자라는 단어도 약합니다. 거의 '사회에 대한 절망'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네요. 혹자는 이 영화를 'SF'로 분류하시는데, 사실 제가 보기엔 SF 보다는 정치물이나 사회 풍자물에 가깝습니다. 특수 효과가 쓰인 건 사실이지만, SF의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특별한 과학적 설정이나 장치 따위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거든요. 나오더라도 정말로 부수적인 도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영화 전체를 흐르고 있는 것은, 가족애도 아니요, 괴물이 가져오는 공포도 아니요, 우리 사회에 대한 깊은 실망과 분노입니다. 정말 우리 가 이런 '다 썩은 구정물' 속에서 살고 있는가 공포스러울 만큼, 이 사회 이 정부 이 나라 에 대한 불신과 분노는 아주 날카롭습니다. 영화의 내용은 (다들 보셨다는 전제하에서) 비교적 간단히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한강변 에서 매점을 하는 박씨 할아버지네 가족이 주역입니다. 할아버지에게는 세남매가 있는 데요. 큰아들은 약간 모자라고 순박하지만 외동딸에 대한 사랑이 극진합니다. 둘째 아들 은 어렵게 대학까지 졸업해 놓고 취직을 못해서 술로써 세월을 보내는 백수죠. 막내딸은 재능있는 양궁 선수이지만 꼭 결정적인 순간에 우승을 놓치고 마는 안타까운 징크스가 있습니다. 이들 가족에게 그나마 웃음을 안겨다 주는 귀염둥이는 바로 큰아들의 중학생 딸이죠. 그 딸이, 한강에서 난데없이 튀어나온 괴물에 의해 물속으로 끌려감으로써 얘기 가 시작됩니다. 가족들은 아이가 죽은 게 아니라 산채로 둥지에 끌려갔을 뿐이라고 항변하지만, 정부는 미국과 세계의 눈치를 살피면서, 무슨 바이러스가 퍼질 위험성이 있다는 이유로, 한강에 있던 사람들을 모조리 격리합니다. 견디다 못한 가족들은 필사적으로 병원을 탈출해서 아이를 구하러 나서고, 졸지에 위험한 세균 감염자로 지명 수배되는 처지에 몰리죠. 뭐, 그 와중에 할아버지는 괴물과 싸우다 세상을 떠나고, 큰아들도 다시 체포되어 바이러스 를 찾는다면서 머리에 구멍까지 뚫립니다. 그렇지만 천신만고 끝에 찾아낸 아이는 이미 싸늘한 시체로 변한 뒤였습니다. 아주 허무하고 쓸쓸한 느낌이 드는 결말이죠. 다만, 그 아이가 괴물 둥지에서 구해내 보살핀 어린 남자애 하나가 살아남아 그나마 쓸쓸함을 좀 달래줄 뿐. 몇몇 분들께서 이미 지적하시는 것 같던데, 이 영화에서 진짜 '괴물'은 한강 속에서 튀어 나온 그놈이 아닙니다. 진정한 괴물은 바로 우리 정부이고, 그런 괴물을 탄생시킨 것은 (미군에서 흘려보낸 약품에 오염된 한강이 아니라) 오염되고 썩은 우리 사회죠. 평범한 시민들을 억압하고 괴롭히면서도 강대국의 눈치를 보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줄 아는 일이 없는 무능하고 썩은 '정부'가 바로 이 영화의 진정한 괴물이요 공포의 대상입니다. 정부뿐만 아니라, 이 세상 전체가 사실상 괴물처럼 그려집니다. 가족들은 아이를 구하기 위하여, 경찰에 쫓기고 군대에 쫓기고, 방역 당국에 쫓깁니다. 괴물에게 쫓기는 장면은 오히려 적을 정도입니다. 이 영화에서의 괴물은 크기도 비교적 작을 뿐더러, 화염병과 쇠막대로 죽일 수 있을 만큼 약한 편입니다. 진짜 무섭고 거대한 괴물은 바로 영화 속에서 묘사된 '썩어빠진 세상'입니다. 공무원에서 청부업자까지 돈을 주지 않으면 도통 뭘 해줄 생각을 하지 않으며, 믿고 찾아간 사람은 현상금을 노려서 몰래 경찰에 밀고하죠. 정부는 무능하고, 사회는 썩었으며, 강대국들은 자기네 이익 챙기기에 바쁩니다. 방송은 정부의 대변인 노릇만 하고, 신문들은 선정적인 보도만 하며, 기자들은 특종에 눈이 멀었고, 경찰은 제 밥그릇 지키기에만 바쁘며, 의사들은 돈없는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불친절합니다. 사방에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썩은 강물이 바로 이 세상이란 것이죠. 혹자는 이 영화가 '반미 영화'라고 평하기도 합니다만, 제가 보기에는 딱히 미국이란 나라 에 국한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약간은 과장해서 말하자면, 이 영화는 '소시민을 억압할 수 있는 모든 거대 권력'을 싸잡아 비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비판'이라는 말대신 '풍자'란 말을 쓴 것은, 공평하고 차분히 우리의 사회의 문제점을 파헤친다기 보다는, 권력을 지닌 자들을 모조리 몹쓸 놈들로 희화화하여 신랄하게 욕하고 있기 때문이죠. 할아버지와 손녀 는 죽고, 큰아들은 온몸에 주사 구멍이 뚫렸으며, 작은 아들과 막내딸도 모든 것을 다 잃어 가면서 처절하게 고생을 했는데도, 정부는 미군 병사의 죽음에는 한없이 애도의 뜻을 표하 면서도 이들 가족에게는 아무런 보상도 해줄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마치 그들같은 하찮은 민중들에게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것처럼.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굉장히 씁슬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이 영화를 종종 한국적인 재난 영화라고 하던데요. 그 '한국적'이란 의미는 '가족애'에서 오는 게 아닙니다. 이 영화에서 나오는 '가족애'라면 헐리우드 재난 영화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죠. 다만, 등장 하는 '가족'들이 우리와 같은 말을 쓰고 같은 땅에서 살고 있을 뿐입니다. 이 영화가 한국 적이라고 느껴진다면, 오히려 영화 속에 그려진 썩어빠진 사회와 정부의 모습이 우리에게 '친숙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과연 '한국적인 내용'이라면, 저로서는 정말 새삼 우울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군요. '아아, 내가 이런 썩은 세상에 살고 있구나'하고서 말입니다. 만약 미래 사회를 이렇게 그렸다면 좋은 디스토피아 SF물이 될 수도 있었을지 모릅니다만,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사회를 그렇게 그렸기 때문에 남의 일처럼 볼 수만은 없었던 것입니다. 영화가 던져주는 메시지는 제게는 굉장히 분명했습니다. 소시민들이여 일어서라! 정부는 그대들을 버렸다! 언론도 그대들 편이 아니다! 강대국은 우리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돈이 없는 자들이여, 가족들이 위험에 빠진다면 경찰도 군대도 도움이 안된다! 스스로 무기를 들어라! 가족을 지킬 수 있는 건 오직 그대들 자신의 힘 뿐이다! 모두 일어서라! 썩어빠진 사회와 정부는 저리 비켜라! 우리는 우리끼리 보듬고 의지하며 살련다! 영화 마지막에서, 정권 퇴진 운동의 상징인 '화염병'으로 괴물과 싸우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보면 상징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메시지가 조금 더 강경했더라면, 저로서는 이 영화를 완전히 '민중 항쟁 선전물'에 가깝게 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영화 자체는 나름대로 잘 만들었음이 분명합니다. 주연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하고, 툭툭 튀어나오는 (헐리우드식 개그와는 또다른) 개그들도 분명 재미있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사회 권력에 대한 극도의 분노와 불신은 다소 지나치게 맵습니다. (물론 이건 보는 사람의 주관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저는 제가 느낀 대로 말씀드릴 뿐이니 오해없으시길 바랍니다.) 돈 없는 놈들은 정말로 저런 재난이 닥쳤을 때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인가 하는 허무함, 아무리 그래도 우리 나라 우리 정부가 있기 때문에 국민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지 않느냐 하는 긍정적 사고에 대한 철저한 난도질, 죽기 싫으면 스스로 알아서 살길을 개척 해야 한다는 아픈 채찍질. 제겐, 보면서 선뜻 삼키기 어려울 만큼 거북함도 느껴졌습니다. 그래도 저는 희망을 갖고 싶네요. 아무리 썩기는 했어도 우리 사회에는 아직 좋은 사람들 이 많다는 희망을. 그 끔찍한 '괴물'이 처절하게 짓밟고 가버린 폐허 속에 아직 남아있는 작은 조각의 희망 하나라도 한번 찾아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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