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가박스 코엑스 점에서 '디워'를 보고 왔습니다. 디워를 상영하는 M관 입구부터 아주 그럴싸하게 꾸며 놓았더군요. 홍보에 많은 공을 들인 것 같았는데, M관 의자 하나하에도 '디워'를 홍보하는 커버가 씌워져 있을 정도였습니다. 과연 그런 홍보 에 걸맞게 충실한 볼거리를 제공할 것인지 무척 궁금하더군요. 그리하여 예고편이 다 지나고 본편 뚜껑을 열어봤더니만... (이 다음부터 완벽 스포일러가 이어집니다. 아직 안 보신 분들은 절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영화는 LA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진 대형 폭발 참사 현장에서 시작됩니다. 저명한 TV 기자 '이든'은 그 폭발 현장에서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거대한 비늘을 목격하고는 어렸을 적에 겪었던 신비로운 체험을 떠올립니다. '잭'이라는 노인이 경영하는 어느 골동품 가게에서 그것과 똑같이 생긴 거대한 비늘을 발견했을 때의 기묘한 체험을. 이때부터 시간적 배경은 15년 전의 과거로 돌아갑니다. 소년 이든은 우연히 발견한 그 거대한 비늘이 자신에게 반응하는 것에 무척 놀라워 합니다. 그 때 잭이라는 노인이 '바로 너였구나'하면서 놀라운 비밀을 이야기해주기 시작하죠. 이야기의 배경은 다시 5백년 전의 조선 시대로 옮겨갑니다. 이 세상에는 선한 이무기와 악한 이무기가 존재하는데, 선한 이무기는 착한 일을 많이 한 대가로 하늘로부터 여의주를 받아 용이 되어 승천할 수 있다는 배경 설화가 소개되는군요. 그렇지만 우리의 악당 보스(?)인 사악한 이무기는, 용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버리지 못하고 선한 이무기를 위하여 준비된 여의주를 빼앗을 음모를 꾸밉니다. 그 음모를 막기 위해, 하늘에선 스님 한명과 용사 한명을 파견하는데, 그들의 임무는 여의주의 화신인 어깨에 용 문신이 있는 여자를 지키는 것. 물론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용사 와 여인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됩니다. 스무살이 되면 여의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그 여인은, 결국 스무살이 되자 자신을 납치하려는 사악한 이무기의 총공격(...)을 받는군요. 여자 하나 납치하자고 완전히 대규모 군대가 출동합니다. 중세 시대 기사 갑옷으로 무장한 대군과 조선 시대 관군의 전투는 상당히 독특한 느낌을 주죠. 무슨 다연장 로켓포 비슷한 엄청난 현대식 화기 로 무장한 대군을 상대로, 화포와 창칼을 가지고 저항하는 조선 시대 군사들의 모습은 참 눈물 겹습니다. 결국 성은 초토화가 되고, 여인은 포로로 잡혀 끌려갑니다. 하지만 그때 스님과 용사 가 이무기의 군대를 습격하여 여인을 구해내죠. 스승님이 혼자서 대군 속에서 칼춤을 추며 분전하는 사이, 용사는 '운명을 바꾸자'며 자신의 신표인 목걸이(일종의 애뮬렛) 까지 내버리고 사랑하는 그 여인과 함께 도망쳐 버립니다. 목숨을 걸고 싸우다 부상을 입고 겨우 빠져 나온 스님은, 자기 제자가 신표를 버리고 여자와 함께 도망친 걸 알자 무진장 허탈해 하죠. 하지만 용사와 여인은 끝내 이무기에게서 도망치지 못하고 높은 절벽에서 아래로 뛰어 내려 목숨을 끊습니다. 그래서 5백년만에 다시 태어난 용사의 현재 모습이 바로 '이든' 이라는 거죠. 이든에게는 '새러'라는 이름의 환생한 여의주의 화신을 찾아내어 보호할 책임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 용사의 신표를 다시 건네주는 잭. 다시 현재로 돌아 와서, 이든은 사악한 이무기가 다시 나타났음을 알고 새러를 찾아내 보호하려고 하는데, 문제는 단서가 너무 적어서 찾아낼 방법이 없다는 겁니다. 그러는 사이 이무기도 여자를 찾아서 여기저기서 소동을 일으키고, 이든은 우연찮게도 동료 기자가 찍어온 사진 속의 여자가 새러임을 알아내고 그녀가 입원한 병원으로 달려 가서 보호하려 합니다만, 이무기가 들이닥치는 바람에 자기 운명에 탄식하며 필사적인 도망길에 나섭니다. 새러는 이든이 주선해 준 의사의 최면술 덕분에 자기 전생을 기억해 내고 여의주의 힘에도 눈을 뜨지만, 그건 오히려 사악한 이무기를 더더욱 자극해서 끌어 들일 뿐이죠. 하지만 이든은 때때로 변신한 모습으로 나타나 자신을 도와주는 잭의 충고 를 무시하고, 유일한 방법이라는 '그랜드 케이브'로 가지 않고, 운명을 바꾸겠다며 계속 도망치는 길을 택합니다. 새러와 이든은 도망치고, 이무기는 그들을 추격하면서 방해가 되는 차량과 건물을 그야 말로 닥치는 대로 때려부숩니다. 별다른 무기도 초능력도 없지만, 그 거대한 몸뚱아리와 단단한 비늘로 도시를 헤집고 다니는 것 자체가 엄청난 파괴를 불러오는군요. 물론 그걸 가만 두고 볼 미국 정부가 아니죠. 즉시 군대가 출동하는데, 군대가 출동하기 전에 거대한 이무기를 상대로 권총을 가지고 맞서는 LA 경찰들의 모습도, 참 조선 시대 군사들 만큼 이나 눈물겨워 보였습니다. 이리하여 다시 부활한 사악한 이무기의 군대와 미군 사이에 처절한 시가전이 벌어집니다. 이 장면은 이 영화의 최고 백미로서, 정말 신나게 쏘아대고 신나게 때려부수더군요. 공중 에서는 헬리콥터와 입에서 불을 뿜는 익룡이 싸우고, 지상에서는 조선 시대 군사들을 싹 쓸어버렸던 다연장 로켓포며 중세 갑옷들이 또 설쳐 댑니다. 그걸 기관총과 탱크로 상대 하는 미군. 이번엔 그럭저럭 싸움이 되더군요. LA 도심을 배경으로, 제목 그대로 한바탕 대규모 전쟁이 발발합니다. 부서지고 깨지는 LA 건물과 애꿎은 자동차, 그리고 미친듯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시민들. 그야말로 아비규환이 연출되죠. 그 싸움을 틈타서 새러와 이든은 다시 죽어라고 도망칩니다. 그러다 친절하게도 자신들을 도와주겠다는 FBI 요원을 만나게 되는데, 그 사람은 이런 불가사의한 사건만 계속 추적해 왔다면서, 자기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새러를 죽이는 것만이 유일한 해법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최소한 5백년 동안은 안전하다는 거죠. 밖에서 무수하게 죽어가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그것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한가지 방법이긴 한데... 결국 요원이 방아쇠를 당기고 이든은 새러를 몸으로 감쌉니다. 첫번째가 실패하자 두번째 방아쇠를 당기려는 그 요원... 하지만 그 요원의 동료가 보다 못해 그를 먼저 쏴서 죽여 버립니다. 그리고 친절하게 자동차 열쇠까지 내주면서 새러와 이든을 도망치게 하죠. 다시 필사의 도주에 나선 새러와 이든. 하지만 결국 익룡 떼의 습격으로 붙잡혀 포로가 되는 새러와 이든. 그리하여 끌려간 곳이 어떤 거대한 동굴 속 신전 아니면 궁전인데, 아무래도 저 곳이 잭이 말했던 '그랜드 케이브' 같았습니다. 이든은 꽁꽁 묶여있고, 새러는 이무기를 위한 제물이 되기 직전이죠. 엄청난 숫자의 군대가 이무기를 향해 환호성을 지르는 가운데, 이무기는 입을 짜악 벌려 새러를 먹어버리려고 합니다. 그때 열받은 이든이 폭주하고, 난데 없이 하늘에서 엄청난 빛이 내려와서 이든이 걸고 있던 용사의 신표에 와 닿습니다. 갑자기 그 신표가 엄청난 힘을 발휘해서 이무기의 대군을 싹 쓸어버립니다. 농담이 아니라, 핵이라도 폭발한 것처럼 그 엄청난 대군이 흔적도 없이 재로 변해 싹 날아가 버리고 맙니다. 그러고 보면, 5백년 전의 그 용사는 정말 어리석은 짓을 했군요. 이무기의 대군을 쓸어버릴 수 있는 신표를 버리고 도망쳤으니 말입니다. 하여튼 그 바람에 충격을 받아서 이무기 또한 나가 떨어진 상태에서, 이무기 군대의 대장만이 필사적으로 이든을 죽이려 하는데, 그 자도 괜히 칼끝으로 용사의 신표를 잘못 건드렸다가 비명횡사하고 맙니다. 명복을... 이제 홀로 외롭게 남은 사악한 이무기. 그래도 끝까지 힘을 내어 새러를 먹어버리려 하는데, 이때 원래 하늘이 정한 여의주의 주인인 선한 이무기가 나타나 사악한 이무기와 한판 싸움을 벌입니다. 치열한 싸움 끝에 선한 이무기가 힘에서 밀려 위험에 빠지자, 새러는 도망치자는 이든의 애원을 물리치고 자기 몸에서 여의주를 꺼내는군요. 그리고 사악한 이무기에게 넘겨 줄 것처럼 하다가, 갑자기 선한 이무기의 입 속으로 내던져 버립니다. 그러자 선한 이무기는 여의주의 힘을 받아 껍질을 벗어버리고 용으로 멋지게 파워 업하는군요. 이 용은 지금까지 많이 보아 왔던 서양의 용과는 디자인이 달라서 아주 날씬하고 민첩합니다. 선한 이무기가 용이 된 걸 보고도 여전히 포기를 못하는 악한 이무기. 여의주를 다시 빼앗을 참인지, 하늘을 신나게 날아다니는 용에게 필사적으로 덤벼드는군요. 하지만 상대가 안됩니다. 결국 용이 내뿜은 불꽃을 맞고 깨끗이 불타버리는 사악한 이무기. 새러는 다음 생에서 또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면서 여신(아마도 선녀?)이 되어 용의 몸안으로 흡수되는데... 새러를 흡수한 용은 슬픈 눈물을 뿌리면서 이든의 머리 위를 아쉬운 듯 스쳐가지고는 하늘 저편으로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혼자 쓸쓸하게 남은 이든의 모습에서 엔딩. 엔딩 크레딧 전에는 '욕을 먹어 가면서도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라는 심형래 감독의 회상이 나오더군요. 물론 목소리는 없이 자막과 사진만으로. 영화가 끝났을 때 한번, 그 회상 장면이 나올 때 또 한번 관객들이 크게 박수를 치면서 환호성을 올렸습니다. 이렇게 해서 90여분간에 걸친 디워가 막을 내렸습니다. 내용은 대충 이렇고, 그럼 한번 평을 해보겠습니다. 첫째, 앞부분의 조선 시대 회상 장면이나 전생 이야기가 너무 엉성하다고 하시는 분들이 다소 계시던데, 제가 보기에는 엉성하다기 보다는 '진부한' 이야기입니다. 엉성하다면 뭔가 이빨이 빠진 듯 말이 안되어야 하는데, 적어도 말은 됩니다. 다만, 뻔하게 말이 된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죠. 선택받은 용사와 그 용사가 지켜야 할 여인이 사랑에 빠진다는 것? 말이 안될 이유가 없습니다. 다만 너무 뻔하죠. 운명에서 도망치기 위해 자살한다? 말이 안될 이유가 없습니다. 다만 너무 뻔할 뿐입니다. 이 부분은 제가 보기엔 엉성한 구성이라기 보다는 진부한 구성이죠. (보충) 제가 말하는 진부한 구성과 엉성한 구성의 차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 진부한 구성 1. 왕자님과 공주님이 있었습니다. 2. 왕자님은 무진장 잘 생겼고 능력이 뛰어납니다. 3. 공주님은 무진장 예쁘고 마음씨가 착합니다. 4. 왕자님과 공주님은 만나자 마자 사랑에 빠졌습니다. 5. 왕자님과 공주님은 결혼하여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이 구성은 지독히도 진부하고 전형적이지만, (완전히 작정하고 태클을 걸자면 모르겠지만) 굳이 트집잡을 거리는 없습니다. 다만, 자꾸 보다 보면 식상해서 별로 다시 보고 싶지는 않죠. * 엉성한 구성 1. 왕자님과 공주님이 있었습니다. 2. 왕자님은 공주님의 아버지를 죽인 원수였습니다. 3. 공주님은 왕자님의 어머니가 오래 전 낳아서 버린 아기였습니다. 4. 왕자님과 공주님은 서로의 비밀을 알았습니다. 5. 왕자님과 공주님은 그래도 결혼하여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이건 말이 안되는 구성입니다. 왕자와 공주가 어떻게 서로의 비밀을 알았는지, 그럼에도 어떻게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살 수가 있는지, 이빨 빠진 듯한 비약이 보이죠. 이런 류가 제가 말하는 엉성한 구성입니다. 가끔씩 참신한 내용이 돋보이기는 한데, 그 참신한 내용 을 벌여놓기만 하고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면 이런 사태가 발생합니다. 둘째, 비단 조선 시대 부분 뿐만이 아니라, 디워 자체가 그렇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스토리가 엉성하다기 보다는 진부한 쪽에 가깝습니다. 물론 상영 시간 때문에 잘라내서 그런지 가끔씩 스토리상 비약이 심하고, 마지막에 용사의 신표가 빛을 발하여 대군을 싹 쓸어버리는 장면은 정말 '반칙'에 가깝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꼽는 디워 스토리상 최악의 문제점) 그렇지만 전체적으로는 헐리웃 블록 버스터에 비해 딱히 스토리가 유난히 엉성하다고 할 순 없다는 느낌이더군요. 다만, 전개가 지나치게 예측 가능할 정도로 진부하고 뻔한 게 문제라면 문제겠죠. 셋째, 그렇다면 스토리가 진부한 게 어느 정도 문제냐 하면, 저는 그렇게까지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제가 보기에, 심형래 감독에게 있어서 이 작품의 절대적인 목적은 자신이 홀로 이룩한 기술력을 '자랑하는' 전시회 같은 겁니다. 따라서 스토리에서 무리하지 않고, 지극히 무난하게 예측 가능한 진부한 구성을 택한 건, 어떤 의미에서는 현명한 선택을 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덕분에 보는 사람은 스토리에 골머리를 썩지 않고도, 오로지 화면상에 나타나는 기술적 성과에 집중할 수가 있거든요. 엉성한 스토리라면 불완결적이고 비약적인 구성으로 인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당혹스러운 기분이 들게 하지만, 진부한 스토리는 적어도 자체적 완결성은 갖추고 있죠. (윗쪽의 보충 설명 참조.) 넷째, 진부한 스토리의 문제점은 너무 뻔해서 사람의 뇌가 굳이 집중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고 그 때문에 지루하다는 건데, 이 작품은 그 대신 심혈을 들인 기술력으로 그 지루함을 공략합니다. 판타지스러운 대군의 모습은 어딘가 온라인 게임 동영상을 연상시키지만, 여느 온라인 게임 영상 보다 단연 사실성이 우수합니다. 특히 이 작품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이무기는 비늘 하나 하나가 매우 그럴 듯하게 묘사되었을 뿐 아니라, 도시를 헤집고 다니는 자체만으로 엄청난 재앙과 파괴를 가져오는 모습이 상당히 박진감 넘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관객들이 쳤던 그 박수의 의미는 아마도 십중팔구는 그 엄청난 묘사에 대한 찬사가 아닐까 싶더군요. 다섯째, 기술력이 어느 정도 수준이냐 하면, 제가 전문가가 아니라서 함부로 언급할 단계가 못될 것 같습니다. 이 영화에 필요한 비평은 스토리가 어떻다는 문제 보다는, 그래픽 전문가가 나서서 어떤 부분의 그래픽은 어떤 점에서 좋고 어떤 점에서 보완이 필요하다는 기술적인 문제에 집중이 되어야 할 듯 싶더군요. 다만, 순전히 관객의 입장에서는, 예전에 나왔던 고질라와 비슷한 수준의 기술력이 아닐까 싶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론 어느 부분에서는 다소 CG라는 실감이 들고, 어느 부분에서는 실사 영상과 매우 위화감 없이 융화되어 있는 등, 같은 작품 내에서도 편차가 있기는 했습니다만. 여섯째, 만약 굳이 스토리를 보완해서 진부함을 없애고 싶다면 뜯어 고쳐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특히, 앞서도 언급했던, 이 작품이 엉성하지 않다고 변호해 주고 싶음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변명을 해주기가 힘든, 마지막에 이든이 혼자서 이무기의 대군을 쓸어버리는 그 장면. 그 장면은 아무래도 상영 시간을 맞추기 위해 편집을 하다 보니 뭔가 잘려나간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비약이 너무나도 심합니다. 잭이 굳이 '그랜드 케이브'로 가라고 재촉한 것도, 아마 그 이무기 대군 몰살 장면과 관련 이 있을 것 같기는 한데, 그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기 때문에 반칙성 공격에 가깝다는 인상이 너무 강하게 들더군요. 반지의 제왕에서도 사우론의 대군이 단번에 몰살당하기는 하지만, 그건 진작부터 약속된 게임의 법칙이었습니다. 프로도가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에 승패가 달려있음은 모두가 잘 아는 사실이었고, 그걸 성공시키자 싸움에서 승리한 건 이미 예정된 공식이었죠. 그러나, 이 작품의 그 어느 대목에서도 문제의 애뮬릿이 그렇게 절대적인 승리의 열쇠라는 점이 암시되지는 않습니다. 일곱째, 인물의 관계에서는, 잭의 역할이 전형적인 조력자 캐릭터라는 점이 일단 눈에 띕니다. 그는 5백년 전에는 직접 칼을 들고 싸우다 제자에게 배신(?)당했는데, 거기에 충격을 받았는지 이번에는 직접 나서기 보다는, 다양한 인물로 변신해서 이든과 새러를 인도하고 간접적으로 도와줍니다. 이든 의 사명을 일깨우고 수시로 간접적인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 심형래 감독은 아무래도 영웅 신화 속의 조력자 캐릭터를 염두에 두고 그를 설정한 듯 싶습니다. 그에 비해 이든과 새러는, 중간에 서로 사랑 에 빠지는 장면이 다소 비약적인데다가, 운명과 싸우는 모습이 (상영 시간과 엄청난 전투씬 영상쪽에 할애된 시간의 압박도 있어) 제한적으로 나타나 있어 그렇게 인상적인 캐릭터는 아니었던 듯 싶기도 합니다. 영상을 통한 기술력 소개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다 보니, 캐릭터 묘사에 할애되는 시간이 줄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반작용이겠죠. 여덟째, 여기서 흥미를 끄는 인물이 하나 있는데, 바로 새러를 죽이려다 동료 손에 죽은 FBI 요원이죠. 그를 좀더 부각시켜서, 이무기-인간의 갈등 말고도, 인간-정부의 갈등을 하나 더 만들었더라면 좀더 흥미로운 갈등 구조가 되었으리라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늘이 정해준 운명을 대변하는 이무기, 인간 사회가 정해준 운명(다수를 위해 소수는 희생할 수밖에 없다)을 대변하는 FBI,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다가 갈 길을 찾는 선택받은 소수. 이런 대립 구도였다면, 캐릭터도 좀더 살아날 기회가 있고, 구성 또한 진부함에서 다소 벗어날 수 있었을지도 모를텐데 좀 아쉽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 FBI 요원의 역할이 너무 아쉽더군요. 아홉째, 어쨌든 결론적으로 영상이나 음향 등의 기술력은 상당히 훌륭합니다. 다만, 이젠 전세계 영화 시장에서 기술력이 점점 상향평준화되고 있지 않나 하는 느낌도 드는데, 그 기술력만으로는 승부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게 문제겠죠. 다음엔 당연한 소리지만, 캐릭터와 스토리를 개발해서 기술력의 내실 을 채워야 할 것입니다. 나름대로 동양 신화와 서양 판타지 분위기를 절충하려고 시도했는데, 아직은 몇몇 관객들이 조선 시대 관군과 중세 판타지 군대가 싸우는 모습에서 어딘가 위화감을 느끼고, 빼빼 마른 동양식 용의 모습에서 어색함을 느끼는 경우도 없지 않아 보였습니다. 이 점을 좀더 그럴 듯하게 다듬는 것도 한가지 과제가 되겠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열째, 뭐, 여러가지 얘기를 했지만, 심형래 감독이 그동안 열심히 고생한 노력의 성과는 충분히 드러난 작품으로 보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도대체 그 많은 노력과 예산을 다 어디다 썼나 싶은 작품도 없지는 않지만, 이번 디워는 그 성과가 어느 정도 충분히 드러나 보인다는 점에서 다행스럽다고 할 수 있겠죠. 종합적으로 평하건대, 이종 격투기를 보러 가신다고 생각하시지 말고 볼거리와 화려함에 치중한 프로 레슬링을 보러가신다는 느낌으로 보신다면, 나름대로 재미있게 보실 수도 있는 작품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간중간에 튀어나오는 미국식도 아니고 한국식도 아닌, 보편적인 개그 센스도 그럴 듯 하더군요.) 하여튼, 심형래 감독님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작품도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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