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반게리온 신극장판 서

(넌 혼자가 아니야... 저건 이번 극장판 '서'의 부제인 듯. 중간에 아이캐치에서도
EVANGELION:1.0 YOU ARE (NOT) ALONE. 라고 나오죠.)

용산 CGV에서 선행 개봉을 보고 왔습니다. 좌석이 꽉 찼더군요. 덕분에 그다지 넓지 않은 상영관 안이
덥고 답답한 느낌도 없지 않았습니다. 에바 매니아들이 이렇게 많았나 싶었지만, 본편이 끝나고 '계속'
이라는 자막이 뜨자 당황해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적지 않은 관객들은 '에바가 유명하다는 소리
는 들어서 보러 왔지만 자세히는 모르는 일반인'이 아닐까 하는 추측도 들었습니다. 어떤 분은 자신과
동행한 여자분한테 '저거 원래 30분짜리 15편 TV판을 2개의 극장판으로 압축한 것'이라고 열심히 설명
하시던데... 잘못된 정보죠. 어쨌든 의외로 에바 매니아가 아닌 분들이 적지 않게 보러 오셨음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역시 우리나라에서 아직 순수 매니아들만으로 극장을 꽉 채우는 건 쉽지 않은 일인 걸까요?
앞으로 보러 가실 분들도, 자기 전후좌우에 앉은 분들이 전부 에바 매니아라고 생각해서 괜히 혼자서만
박수치시거나 환성을 지르셔서 무안을 당하지 않도록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괜한 노파심?)

자, 본편에 대해서 얘기해 보겠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첫번째 극장판은 TV판의 신지 등장(?)에서 라미엘
격파까지를 다루고 있는데요. 덕분에 아스카는 등장하지 않지만, 놀랍게도 나기사 카오루는 거의 마지막
에 달에서 깨어나는 모습으로 깜짝 등장합니다. 예고편에서는 '에바 6호기와 함께 달에서 내려온다'는데,
이건 대체 무슨 일인지... 극장판 오리지널 전개가 될 모양입니다. 그외의 다른 익숙한 캐릭터들은 익숙한
성격과 익숙한 말투로 옛추억을 자아내며 상영 시간 내내 열연을 펼칩니다. TV판과 비교해 보면, 똑같은
장면의 똑같은 대사인데도 말투가 다소 달라진 부분들이 몇군데 눈에 띄더군요. 더 나아진 건지, 아니면
퇴보한 건지는 각자 판단에 맡길 일이겠습니다만...

오리지널 추가씬도 있고, TV판에서 빠진 장면도 있으며, 설정이 다소 바뀐 장면도 있습니다만, 전체적인
내용은 TV판과 같습니다. 극장판의 상영 시간 제약 때문인지, 몇몇 명장면들 (네르프를 떠나려던 신지가
기차를 타지 않고 남는 장면 등)이 빠진 건 아쉽습니다만, 대신 '에바에 타지 않으면 쓸모가 없고, 에바를
타는 건 너무나 무서운' 딜레마에 사로잡힌 신지의 고민과, 그걸 달래고 감싸주는 미사토 및 레이의 모습
에 예리하게 초점이 맞춰져 있어 심리적 몰입감은 더해진 측면도 없지 않습니다. 그 덕분에 양전자총으로
라미엘을 저격하기 직전 두려움에 떠는 신지에게 '너는 죽지 않아, 내가 지켜줄테니까'하는 레이의 모습
이 참으로 가슴에 와 닿더군요. (이 대목에서 신지의 두려움이 TV판 보다 훨씬 자세히 부각되었습니다.)

어디까지나 극장판으로 만들어진 작품이기 때문에, 몇몇 장면은 커다란 화면으로 봐야 진정한 가치를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발달된 기술을 이용하여 훨씬 더 웅장하고 박진감 있게 표현한 사도와 에바의 디자인 및
전투장면, N2 지뢰의 폭발 장면, 제 3 신도쿄시의 상승과 하강 장면,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하면서 화려하게
싸우는 라미엘의 모습 (라미엘은 정말 이번 극장판에서 엄청 멋있어진 느낌입니다. 산 하나를 통째로 날려
버리는 장면이 압권.) 등등은 극장의 큰 화면과 웅장한 음향 효과로 봐야 제 맛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더군요.
뭐, 돈을 아끼려는 의도에서인지, 예전의 TV판을 거의 그대로 가져다 쓴 듯한 화면도 없지 않았습니다만...

많은 분들이 걱정했던(?) 삭제씬은 딱히 없는 것 같았습니다. 애초에 노출씬이라고 해봐야 미사토의 목욕씬,
레이와 신지의 안경씬, 레이가 라미엘과 싸우기 위해 슈츠로 갈아입는 장면 등인데, 미사토의 목욕씬은 별로
잘릴 장면이 아니고, 저 두번에 걸친 레이의 가슴 노출씬은 아주 짧고 알듯말듯하게 지나가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 없이 넘어간 모양입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자세히 보면 일단 보이기는 보입니다. (뭐가?) 혹시 놓친
분들이 계시면 나중에 다시 한번 찾아보시길... (그러니까 뭐가?!) 한편, 신지군도 두어번 다 벗고(...) 열연을
펼치니까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덧붙이면, 몇몇 장면에서 신지는 아주 반짝반짝 환골탈태한 꽃돌이의 모습을
보여줄 때도 있더군요. 언덕 위에서 바람에 나부끼는 옷깃과 더불어 지그시 세상을 내려다 보는 신지의 모습
은 참으로 눈부십니다. (정말?)

전체적으로 말하면, 이번 극장판은 복잡한 설정이나 미스터리 보다는, 신지의 심리 묘사나 화려한 화면 구성
에 초점을 맞춘 느낌입니다. 어차피 극장판을 보러 올 사람들 중에는 배경 설정을 다 꿰고 있는 매니아들이
많을 것이고, 그들을 상대로 복선이나 암시를 깔아봐야 별 소용이 없다고 판단했던 걸까요? 그렇기 때문인지,
미사토가 두려움에 떠는 신지의 사명감을 일깨우기 위해 네르프 깊숙이 감추어진 거인의 모습을, 그것도 이게
아담이 아니라 '리리스'라고 대놓고 얘기하며 보여주는 모습이 갑자기 나와서 좀 당혹스러웠습니다. 다음번에
나올 극장판 '파'에서는 의외로 오리지널 전개가 많을 것 같다는 느낌도 들더군요. 뭐, 안노 총감독의 속마음
은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습니다만... (벌써부터 어떤 식으로 엔딩을 낼지 불안 반에 기대 반입니다.)

엔딩곡은 상당히 좋았습니다. 엔딩 크레딧을 보니, 가이낙스가 그냥 '원작 협력사'로 물러난 것이 눈길을 끌더
군요. 하지만 어차피 만든 사람들에 큰 차이는 없는 듯 싶습니다만... 피자헛을 비롯해 극중에 등장하는 몇가지
상표명이 눈길을 끌었는데, 엔딩 크레딧에 나온 투자나 협력사가 얼마나 자금을 지원해 주었는지는, 작품 외쪽
에 관심이 적은지라 잘 모르겠습니다. 다들 엔딩이 끝난 다음에 뭔가 나올줄 짐작했는지 참을성 있게 흘러가는
엔딩 크레딧을 다 읽고 있었는데, 아니나다를까, 예고편이 나오더군요. 앞서 언급한 카오루와 에바 6호기가 달
에서 내려온다는 얘기, 그리고 아스카가 일본에 온다는 얘기. 마지막엔 미사토가 코믹한 목소리 톤으로 '서비스
서비스'를 외치던데, 본편의 심각한 분위기와 괴리감이 있어 다들 좀 웃었습니다.

어쨌든 새롭게 거듭난 에반게리온 극장판은, 말 그대로 극장에서 볼 때 제 맛을 느껴볼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과연 다음에 나올 '파'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풀어낼 것인지... 한번 기대해 보도록 하지요. 보다 자세한 이야기는,
이 3부작 극장판이 완결된 다음에 하도록 합시다.

PS) 그런데 일본어 표기가 ヱヴァンゲリヲン으로 바뀐 건 대체 무슨 의미인지...
by 고독한별 | 2008/01/19 22:03 | 애니/만화/성우 | 트랙백(2)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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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미르기닷컴] at 2008/01/19 22:24

제목 : 『에반겔리온: 서(序)』를 두 번째 보고 나서.
【미르기닷컴】 부산국제영화제에 이어, 언론시사회에 참가하여 『에반겔리온: 서(序)』를 두 번째로 보고 왔습니다. ▲『에반게리온: 서(序)』 홍보용 전단지. 전에도 글을 썼지만, 『에반겔리온 신극장판』에 ......more

Tracked from 잠보니스틱스 at 2008/01/20 19:02

제목 : 신극장판 에반게리온 : 서(序)를 보고 떠오르는 생각들
★촬영지: 강남 CGV★ 0. 에봐세대도 아니고 팬도 아닌 마당에 난데없이 보러 간 이유는 순전히 1월 말에 만료되는 영화예매권을 빨리 사용해야 했기 때문이라더라 OTL 1. 같은 퀄리티라도 어떤 작품은 때를 잘 만나 이렇게 두고두고 우려먹는데 어떤 작품은 본편조차 못 끝내고 조기종영되기도 하니 참 세상 고르지 못하더라. 2. 제대로 본 건 tv판 1화뿐이지만 나머지는 잡지기사나 풍문으로 싫을만큼 들은지라 각 장면을 보면서도 낯설다......more

Commented by Ezdragon at 2008/01/19 22:21
신지는 사실 원래 꽃돌이긴 하죠. 얘가 워낙 어두워서 그렇지...
Commented by 나이브스 at 2008/01/19 22:37
오늘 보고 왔는데 참...
Commented by 루시펠 at 2008/01/19 22:53
3부작이면 Air/진심을 그대에게 까지 해줄려나요?(아!! 그거 무리~)
Commented by 알트아이젠 at 2008/01/19 23:15
엔딩곡이 별 기대를 안했는데 좋더군요.
Commented by 인류보완계획 at 2008/01/20 00:08
안노감독이 차린 제작사 카라가 맨앞에 나오길래 재밌었습니다 ㅋㅋㅋ

다음 꽃돌이는 카오루 기대중입니다 ㅋㅋㅋ
Commented by Qumi at 2008/01/20 00:09
저도 삭제 위험 부분(?)을 한번 확인해 봤는데 안되었더군요...;;
Commented by Nobe at 2008/01/27 09:23
ㅠㅠ. 엔딩 곡 뜨는거 보고 나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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