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사 삼국지, 삼국지 연의, 반 삼국지, 후 삼국지 등 4대 삼국지를 모두 읽은 저로서는, 일단 '삼국지 영화'가 나온다니 안 보러 갈 수가 없어서, 때마침 쉬는 날이고 하여 슬슬 구경하러 갔습니다. 큰 기대는 하지 않고, 그냥 눈으로 보고 즐기자는 심산이었는데... 본 소감은... 참 평하기 난감하군요. (어떤 분들은, '삼국지하면 흔히 유비, 관우, 장비, 조조만 떠올리는데, 조자룡을 주인공으로 한 게 신선하다'라고 하시던데... 저로서는 삼국지하면 원래부터 '제갈 공명과 조자룡'을 떠올렸기 때문에, 그런 신선함을 느껴볼 기회는 아쉽게도 없었습니다.) 일단 내용은 이렇습니다. 상산 출신의 청년 '조자룡' (자룡이 '자'도 아니고, 그냥 이름...) 은 '태평천하를 이룩하여 안락한 가정을 꾸리겠다'는 일념 하나로, 유비군의 의용병 모집 에 지원합니다. 거기서 만난 같은 고향 출신의 '나평안' (=홍금보)과 함께 조조군을 맞아 목숨을 걸고 싸우게 됩니다. (이 영화에서는 시간 때문인지, 유비는 어디까지나 처음부터 조조와 천하를 걸고 싸우는 사람으로 그려집니다.) 여기서 문제는... 나평안이 '우리는 여기에 있고, 고향 상산은 여기다'라면서 지도를 짚어 보이는 장면이 나오는데... 나평안이 짚은 곳은 '청주' (지금의 산둥 반도) 부근이란 사실. 그게 뭐가 문제냐 하면... '청주'에서 조조의 1만 대군에 포위된 나평안의 부대를 구출하기 위하여, 무려 '제갈량' 선생께서 유비의 특명을 받아 적진을 뚫고 들어오십니다. (쿨럭) 이미 이야기는 삼국지의 이름을 빌린 '판타지'로 나아가기 시작. 제갈량 선생의 지략 덕분 에 나평안과 조자룡의 1천 군사는, 조조군의 1만 대군을 기습하여 대승을 거두고, 거기에 화가 난 조조는 손녀인 '조영' (=매기큐)을 데리고 유비군을 맹공격하죠. 유비는 그 공격을 피하기 위해 백성들을 데리고 '봉명산'으로 피신합니다. (당양 장판벌... 이런 거 없습니다.) 일전의 승리 덕분에 신임을 얻어 유비의 가족을 호위하는 역할을 맡았던 나평안은, 그러나 공을 세우려는 초조한 마음에 실수를 저지르고 맙니다. 유비의 두 부인과 아들 유선은 결국 조조군에게 잡히고 마는데... 분노에 치를 떨며 나평안을 죽이려 하는 장비. 하지만 조자룡 이 그 창을 가로막죠. 그 바람에 난데없이 조자룡과 장비의 일대혈전이 벌어지는데, 장비가 밀리는 것을 보자 관우가 가세하지만, 2:1로도 조자룡을 당해내지 못합니다. 이 싸움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조자룡은, 유비가 특별히 하사한 갑옷을 입고 봉명산을 내려 가서, 말 한필 창 한자루로 조조군을 헤치고 유선을 구해옵니다. 이후 오호대장군의 반열에 오른 조자룡은, 20여년에 걸쳐 각지에서 유비의 천하통일을 위해 싸움을 거듭하게 되는데... 그런 조자룡의 성공을 뒤쪽에서 부러움과 질투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나평안이 있었 으니... (홍금보, 완전히 천재의 성공을 질투하는 범재의 어두운 면을 극단적으로 보여주죠.) 어느덧 다른 오호 대장군들은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조자룡도 이제는 많이 늙어버린 즈음. 제갈량은 유비의 뒤를 이은 유선에게 청해 북벌을 준비하는데, 조자룡은 관우의 아들 관흥 과 장비의 아들 장포를 대동한 채, 그 북벌의 선봉에 서게 됩니다. 제갈량의 계책에 따라서 관흥과 장포를 다른 길로 보내고, 조자룡은 조조의 손녀인 조영의 대군과 맞서게 됩니다. (이 조영... 이라는 캐릭터는, 아무래도 여성 등장 인물이 너무 없어서 집어넣은 듯...) 늙은 퇴물이라고 자신을 무시하던 한덕의 아들 네명을 단숨에 죽여 없앤 조자룡은, 그러나 나평안이 적국에 기밀을 누설하여 출세를 꾀하는 바람에, 봉명산에 고립되어 수많은 대군에 포위되고 말죠. 할아버지의 숙원을 이루기 위해 조자룡을 꼭 쓰러뜨리려는 조영은, 거듭된 심리전과 일대일 대결로 조자룡의 기운을 빼놓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흔들리지 않고 꿋꿋이 버티는 조자룡. 그 꿋꿋한 모습을 보면서 나평안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됩니다. 믿었던 관흥과 장포도 적의 대군에게 패하여 전사했음이 전해지고, 등지 (이 영화에서 무척 멋지게 나옵니다)를 비롯한 조자룡의 부장들도 모두 전사한 가운데, 조영은 자신에게 충성 하는 한덕의 말에 남몰래 화약을 장착하여 적진에서 다 같이 폭사하게 만드는 비정함을 보여 줍니다. 이리하여 남은 부하들마저 모두 조영의 비정한 자폭 공격에 잃어버린 조자룡은, 결국 마음을 돌이킨 나평안이 출진의 북을 치는 가운데, 홀로 적진으로 돌격해가죠. "그것이 내가 본 조자룡의 마지막 모습이었다."라는 멘트와 함께 영화가 끝납니다. 일단, 좋았던 점부터 얘기하지만, 무엇보다 엄청난 '물량'으로 사람을 압도한다는 점입니다. 비록 장판 전투가 아니고, 이상하게 각색되기는 했지만, 조자룡이 조조의 대군 속에서 분투 하며 유비의 어린 아들을 구하는 장면. 절망적일 만큼 물밀 듯이 몰려드는 조조의 대군 속을 말 한필 창 한자루로 휘젓고 다니는 조자룡의 모습이 아주 실감나게 잘 그러져 있습니다. 뭐, 그 뿐만이 아니라, 영화에서 재현된 연노처럼 당시의 병장기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죠. 또한 유덕화와 홍금보 등등의 경험 많은 배우들의 연기력은 아주 좋습니다. 특히나 홍금보가 연기한 '나평안'은 천재 '조자룡'의 성공을 질투하면서도, 한편으로 그에 대한 우정을 버리지 못하는 안타까운 범재의 모습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의 주된 대립구도는, 조자룡과 조영이 아니라, 조자룡과 나평안이라고도 할 수 있죠. 결론은, 싸움은 허무하고, 출세도 허망 할 뿐이란 것. 싸움에서 승승장구하여 명성이 천하를 뒤흔들어도, 결국에는 아무 것도 얻은 게 없지 않느냐는 얘기입니다. 여기까지는 좋은데, 문제점은 각색이 너무 심하여 삼국지를 아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상당히 당혹스럽다는 점. 아무리 출세를 해도, 빙빙 돌아 결국 제자리에 돌아온 셈이라는 주제를 강조 하기 위하여, 조자룡의 출세가 시작된 전장도 봉명산이고, 조자룡이 마지막으로 장렬히 산화 한 전장도 봉명산으로 설정한 건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이쯤되면 삼국지 등장 인물들의 이름 만 빌린 거의 독자적 창작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죠. 뭐, 삼국지 연의도 어떤 의미에선 그런 소리를 들어도 할말이 없긴 합니다만, 아무래도 머릿 속의 삼국지와 영화 속의 삼국지가 균열 을 일으키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적어도 삼국지 연의의 조자룡은, 싸움에서 한번도 패한 적이 없으며, 자기 집에서 유언까지 남기고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히 늙어 죽은 사람 인데...) 그렇다면 각색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느냐가 관건인데, 이건 보시는 분에 따라 평이 갈리겠지만, 결론이 다소 뻔하고 엔딩이 너무 극적인 게 흠이었습니다. 전쟁은 비참한 것, 출세는 허무한 것, 명예도 부질 없는 것이라는 주제... 지나치게 진부하죠. 유덕화, 홍금보 두 배우의 연기력으로 인해 그나마 어느 정도 살아나기는 했습니다만, 너무나 수없이 반복돼 온 주제가 과연 보는 이들 의 마음에 얼마나 와 닿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아무런 결론을 내지 않고 조자룡이 적진으로 돌진하는 장면에서 끝낸 것도, 어떻게 보면 너무 진부한 연출. 영화는 전체적 으로 보는 이의 예상을 깨뜨리는 무언가를 보여주지는 못합니다. 삼국지가 익숙한 소재이고, 다양한 사극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너무 진부한 주제를 너무 예상이 가능한 전개로 끌어가다가, 너무 흔한 엔딩으로 마무리 지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군요. 뭐, 그런 진부함이 오히려 극 전개를 따라가기 쉽도록 만들어주는 측면도 없지는 않습니다만, 일단 저로서는 아무래도 아쉬움을 떨칠 수 없는 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불만을 상당히 잠재워 주는 게, 바로 앞서 언급한 엄청난 물량 공세. 이 플러스 마이너스의 결과는, 사람마다 다를테니 제 의견은 이쯤에서 마무리 하도록 하죠. 어쨌든, '연의 황후' (이거 아무래도 제목을 '연의 여제' '연의 황제'라고 했어야 하지 않을지...) 나 '포비든 킹덤' 같은 굵직한 중국 영화들이 앞으로 예정되어 있는데, 모처럼 한번 중국 영화에 빠져볼 수가 있겠네요. 마음 비우고 보면 어느 정도 영화표 값은 할테니까요. (헐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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