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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을 보고 나니 다음 내용이 궁금해지더군요. 그래서 2권을 잽싸게 구해가지고 마저
읽었습니다. 다 읽고 나니, 1권에서 느꼈던 인상이 좀더 분명해지더군요. 이거 확실히 '하드코어 디스토피아'물입니다. 분명 무협물적 요소도 있고, 하렘물적 요소도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이 작품의 특징은, '세상의 어두운 면과 인간의 절망 적인 면'을 기막히게 묘사하고 부각시키는 데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 세상은 기본적으로 어둡습니다. 수시로 등장하는 뉴스 제목은, 그야말로 엽기적인 것들 뿐이죠. 기분 나쁘다고 아무렇지 않게 자기 가족을 죽이는 사람들, 오래 살고 싶다면서 어린애들을 잡아먹는(...) 노인, 해결사들의 손에 의해 처참하게 살해된 유명인사들... 신쿠로의 가족을 빼앗아간 공항 테러 사건 같은 건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수준입니다. 도저히 겁나서 살기 힘든 세상으로 묘사되죠. 세상 뿐만 아니라 인간도 절망합니다. 신쿠로는 거의 평균 한두페이지에 한번씩 '자학' 을 합니다. '나는 못난 놈이다' '나는 너무 약해' '나는 비겁하다' '나는 나쁜 인간이다' 등등 온갖 자학적인 멘트가 다 튀어나오더군요. 그렇게 보면, 신쿠로가 그렇게 시달려 고생을 하면서도 유노나 무라사키 같은 여자 아이들에게 집착을 갖는 것도 무리가 아닌 듯 싶습니다. 그들은 진심으로 신쿠로를 대단한 사람으로 봐 주니까요. 2권에서 신쿠로는 해결사로서 한층 더 성장하기 위해, 좀더 커다란 어둠의 조직에 들어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합니다. 그 조직에서는 아직 사람을 죽여본 적이 없는 어린 애송이한테, 우선 사람을 죽여야 받아주겠다고 하죠. 하지만 신쿠로는 사람 죽이는 건 곤란하다고 거부하고, 그 대신 조직에서 죽이려는 사람을 지키는 것으로 입사 시험(?) 을 치르게 됩니다. 2권에서 신쿠로는 정신적으로 뿐만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정말 극한의 극한까지 궁지에 몰립니다. 조직에서 파견한 암살자는 신쿠로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경험과 뛰어난 실력을 지닌 '키리히코'라는 소녀와, 고릴라 같은 덩치와 체격 조건을 지닌 남자. 그들을 상대로 신쿠로는 첫판부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배를 잘려서 창자를 쏟아내질 않나, 건물 위쪽에서 지면으로 곤두박질 치지를 않나, 두개골이 박살날 위기에 빠지질 않나, 하여튼 온갖 육체적 고통을 다 당합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아, 나는 너무 한심해' 라고 정신적으로 더더욱 절망하는 악순환을 반복하죠. 이 소설의 작가분이 원래 그런 부분이 특기인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두운 측면'에 대한 묘사가 너무나 하드코어적일 뿐더러 정확하고 섬세하여 소름이 돋을 정도 입니다. 보다 보면 무섭더군요. 처음부터 끝까지 신쿠로의 가장 큰 강점(?)은 육체적인 튼튼함입니다. 1권에서 근육으로 총알을 막아내더니, 2권에서는 아무리 맞아도 맞아도 죽지 않는 엄청난 맷집을 보여줍니다. 창자를 쏟아도 살아나고, 건물에서 떨어져도 곧 벌떡 일어나고, 고릴라 사내에게 두개골을 있는 힘껏 짓밟혀도 멀쩡하죠. 그러나 육체적인 강인함은 이 경우에는 고통을 강화시키는 안 좋은 요소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예전에도 제가 언급한 일이 있는데, 18금 마법소녀물에서 주인공 마법소녀를 '육체적으로' 괴롭히기 위해 필수적인 조건은 '치유 방법'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고통을 줘도 죽지 않는다면, 그 만큼 괴롭히기 좋은 대상도 없다난 의미가 되죠.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은 죽고 죽고 일백번 고쳐 죽었을 상황에서, 신쿠로는 끈질기게 버티고 다시 일어서니, 그 육체적 고통에 대한 묘사가 더 길고 상세하게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2권에서 신쿠로가 지켜야 할 대상은, 그와 마찬가지로 8년 전 공항 테러를 당한 병약한 소녀. 그 소녀는 온몸에 너무 큰 상처를 입어 인공 장기에 의지해 고통스럽게 살아가죠. 그게 워낙 고통스럽다 보니, '부모님 곁으로 가겠다'면서 암살자를 고용해 자기를 죽여 달라고 부탁한 것임이 나중에 밝혀집니다. 신쿠로 뿐만 아니라, 이 작품에서는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극단적으로 아픈 과거와 괴로운 현재, 절망적인 미래를 살고 있죠.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유일한 구원의 빛이 바로 무라사키. 1권 마지막에서 신쿠로가 담판을 벌인 덕분에, 명문 쿠호인 가문의 외동딸로 공식 인정받고 학교에 다니게 되는 무라사키. 1권에서의 빈곤한 생활은 어디 가고, 자가용과 보디가디를 소유하며, 한도가 없는 신용 카드를 쓰는 등, 그야말로 무적 초딩(...)이 되었습니다. 거기다가, 무참하게 두들겨 맞아 만신창이가 된 신쿠로에게 반격할 기운을 주는 것도 무라사키죠. 마지막 결전에서 '빅풋'이라는 별명의 고릴라 사내에게 만신창이로 두들겨 맞은 신쿠로. 그때 마지막 숨통이 끊어지기 직전, 타이밍 절묘하게 무라사키한테서 휴대폰으로 전화 가 옵니다. 빅풋은 재미있게 되었다며 마지막 유언이나 남기라고 그 휴대폰을 받게 배려 해주죠. 그 전화는 무라사키한테서 온 것. [... 신쿠로를... 보고 싶어...] 이 결정적인 한마디에 신쿠로는 순식간에 각성. '잠깐 기다리라'고 해놓고서, 지금까지 자기를 완전히 갖고 놀던 빅풋을 단숨에 박살내 버립니다. 그리고 '반은 정리했고 반을 처리하겠다'면서 전화를 끊은 다음 키리히코와 대결을 벌이죠. 결과적으로는 무승부가 되었습니다만, 전화 한번에 완전히 다른 실력자가 된 신쿠로를 보고 상대방도 어이가 없어 합니다. 무라사키의 역할은 이것 뿐만이 아닙니다. '빅풋'을 이겼으니 합격한 걸로 쳐서 조직에 넣어주겠다면서, 자기네 조직에 들어오면 공항 테러의 범인을 알려주겠다고 신쿠로를 유혹하는 자리에 나타난 그녀는, '저거 다 거짓말이다'면서 단번에 잘라 말합니다. 1권 에서부터 나온 무라사키의 '거짓말 직감력'은 거의 초능력 수준입니다. 무라사키의 말 한마디에 정신을 차린 신쿠로는 딱 잘라서 제안을 거절해 버리죠. 이 어둡고 절망적이며, 엽기적인 범죄와 교활한 속임수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무라사키 는 어린애 다운 천진함과 날카로운 직감으로 그 세계에서 신쿠로를 인도하는 등대처럼 활약합니다. 이쯤되면 누가 어린애고 누가 어른인지 알 수가 없는데, 이 작품은 애초에 저런 말도 안되는(?) 재야 고수들이 당연시 되는 설정이니까요. 신쿠로가 그 소녀처럼 '자살'을 택하지 않는 유일한 이유가 바로 '무라사키'인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마지막은 아주 순수한 결말로 끝나죠. 지친 신쿠로에게 '무릎 베개'를 해주는 무라사키. 무라사키의 무릎에 아주 편안하게 누워서 신쿠로는 생각합니다. 이 아이와 결혼할 생각 은 없지만, 무라사키를 행복하게 해줄 좋은 남자가 나타날 때까지는 그 곁에 있어주자. 그런데 그렇게 좋은 남자가 안 나타나면 어떻게 하지? ... 조금씩 범죄의 길로 빠져드는 신쿠로였습니다. 하여튼 신쿠로의 어둠과 무라사키의 빛이 대비되면서, 인간과 사회의 절망적인 모습을 매우 섬뜩하리 만큼 하드코어하게 그려낸 면모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다음권에서는 또 어떤 모습을 보일 것인지... 다만, 이 작품은 절망적인 면을 묘사할 때는 아주 박진감 넘치지만, 갈등이 해소되고 평온을 되찾는 장면을 묘사할 때는 다소 아쉬운 느낌도 들긴 하더군요. 예를 들어, 신쿠로가 무라사키의 전화 한통에 전투력이 초사이어인 수준으로 급상승해 버리는 것이라거나, 싸움이 끝나고 그 수많은 사람을 죽인 키리히코에게 '호감'을 느끼 면서 작별하는 신쿠로의 모습 등. 갈등을 묘사하는 건 좋은데, 갈등 해소가 너무 갑자기 이루어져서 당혹스러운 면도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건 '떨어뜨리기'를 잘하는 작품이 '드라마틱한 반전'을 만들려다 보니 생길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숙명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군요. 어쨌거나 세상을 다시 보게 되는 여러가지로 흥미로운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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