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를 읽고 있는데, 연암 선생 대단한 분인 듯

서점에서 새번역 완역 결정판이라고 나온 열하일기(전 3권)를 사서 읽고 있는데요. 읽어
내려가다 보니 연암 박지원 선생님... 참 대단한 분이더군요. 그야말로 무한한 탐구심으로
가득찬 분인지라, 오직 청나라의 신기한 문물을 구경하는 일만 안중에 있을 뿐, 다른 일은
설사 목숨이 달렸다고 해도 개의치 않는 것이었습니다. 가령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었죠.

아시다시피, 연암 박지원 선생님은 청나라에 사신으로 가는 팔촌형을 따라서 중국 여행에
나섰습니다. 연암 선생은 비공식 수행원이라 당연히 사신단의 공식 업무에는 나설 권한이
없었기에, 사실상 신경 끄시고 관광에만 여념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던 중, 청나라의
건륭 황제가 자신이 스승처럼 섬기는 티베트의 라마승을 만나보라는 명을 내려 사신단이
발칵 뒤집히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왜 발칵 뒤집혔는지 구체적 이유가 대놓고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가만 따져보면 당시
조선은 불교를 천시하는 나라였으니, 정통 불교도 아니고 조선인으로서는 보도 듣도 못한
라마교단의 승려를 만나라니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죠. 거기다가 황제가 스승처럼 여기는
승려를 만나게 되면 예의를 갖춰 인사를 올려야 할 것인데, 국왕의 사신이 이국 승려에게
인사를 올린다는 건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이건 제 추측...)

어쨌든 사신단은 한바탕 격론을 벌인 끝에 명에 따르지 않고 상소를 올려 항의하기로 결론
을 내립니다. 모두들 감히 황제의 명을 거역하면 과연 무슨 처벌이 내려질 것인가 싶어서
은근히 겁에 질려 있는 상황인데, 오직 한 사람, 이 일을 기뻐하는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연암 선생이었습니다. 그때 이분이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를 인용해 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 이때 나는 마음속에 기발한 생각이 들며,

"이건 정말 좋은 기회인데."

하기도 하고, 또 손가락을 뾰족하게 하여 허공에 동그라미를 그리며,

"아주 재미있는 문제야. 지금 만약 사신이 황제의 말을 거부한다는 상소를 올린다면 의롭다
는 명성이 천하에 울릴 것이고 나라를 크게 빛낼 터이지."

하고 나는 또 속으로 자문자답하기를.

'황제가 군대를 내서 조선을 칠 것인가? 아니지. 이건 사신이 저지른 죈데, 어떻게 그 나라
에 대고 화풀이를 하겠는가? 결국 사신들은 저 멀리 운남과 귀주 쪽으로 귀양가는 것을 막을
수 없을 테지. 내가 의리상 혼자 조선으로 돌아갈 수는 없으니, 서촉이나 강남의 땅을 내 장차
밟게 되리라. 강남은 그리 멀지 않은 곳이나, 교주와 광동 지방은 북경과 1만여 리나 되는 먼
길이니, 내가 놀러갈 일이 어찌 호화찬란하고 낭만적이지 않을 수 있겠나?'

나는 마음속으로 기뻐 어쩔 줄 몰라 곧바로 달려서 밖으로 나왔다.

(박지원 지음, 김혈조 옮김 <열하일기> 2권, 돌베개, p. 43 중에서) ]

아, 이분 무서워요. (후덜덜덜) 다들 '이제 우리는 죽었구나'하고 벌벌 떠는 상황에서, 혼자서
만 '황제가 귀양을 보내면 얼결에 머나먼 남쪽 구경도 하게 생겼구나.'하고 신바람이 나 어쩔
줄 모르시다니. 바로 다음 대목에서는 강남 구경할 생각으로 흥분한 나머지 아랫 사람을 시켜
돈을 아끼지 말고 술을 사오게 하여 마시기까지 하시더군요. (...)

이런 거야 말로 무한한 탐구 정신의 발로... 하긴 이런 두둑한 배짱과 불굴의 탐구심이 있었기
때문에, 조선 후기의 그 유명한 사상가가 되실 수 있었던 거겠죠? (헐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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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로리 2009/10/18 14:22 # 답글

    뇌내망상이... 좀 강하시긴 하군요 ^^;
  • Merkyzedek 2009/10/18 16:08 # 답글

    여체화 되어도 충분하신 성격이로군요.
  • Joshua77 2009/10/18 17:35 # 삭제 답글

    마치 '아리아'의 아카리를 묘사한 듯한 성격이셨군요. ^^;;;;;
  • dunkbear 2009/10/18 18:34 # 답글

    의외로 막강하신(?) 분이셨네요. ^^;;;
  • 개발부장 2009/10/18 20:27 # 답글

    ...좀 읽어야겠군요. 감사합니다.
  • 원생군 2009/10/18 23:20 # 답글

    괜히 연암 선생이 주목받는게 아니었군요...
  • 백합향기 2009/10/19 13:07 # 답글

    멋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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