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에서 사온, 낙서 가득한 교양 서적에 대한 이야기

여담입니다만, 며칠 전, 헌책방에 들러서 이런저런 서적을 훑어보다가 관심이
있는 주제에 대한 교양 서적 (현재는 절판된 듯)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대충
넘겨보니 앞부분 10여 페이지 정도에 밑줄과 동그라미 등 낙서가 많이 되어 있
더군요. 뒷부분은 괜찮은 걸 보니 아마도 원래의 책주인이 앞부분만 좀 읽다가
팔아버렸나 봅니다.

살까말까 잠깐 고민하다가, 마침 헌책방 주인이 옆을 지나가기에 보여주니까,
그렇게 낙서가 많이 되어 있는 줄은 몰랐다면서 값을 좀더 깎아줄테니 사라고
권유하더군요. 그래서 '어차피 앞부분에만 낙서가 되어 있는데...'하면서 헐값
에 사가지고 왔습니다. 그런데 집에 와서 펼쳐놓고 찬찬히 읽어보니까... 낙서
가 문제가 아니더군요. 낙서 보다는 번역이 문제였습니다.

분명히 해당 분야를 전공하여 박사 학위를 받은 교수가 번역했다고 되어 있는
데, 번역해 놓은 문장이 도저히 이해가 안가더라고요. 뭐, 그다지 중요하지 않
은 쉬운 문장이야 어느 정도 제대로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만, 핵심적이고 중요
한 대목은 한단어씩 손으로 짚어가며 반복해서 읽고 또 읽어도 도무지 의미를
이해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차라리 원서를 읽는 게 낫겠다 싶을 정도였죠.

자세히 보니, 문제의 낙서들도 상당수가 번역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었습니다.
밑줄을 그어놓고 '이게 무슨 뜻이지?' '번역이 이상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이거 우리말 맞아?'라고 불평을 해놓은 낙서가 많더라고요. 그 바람에 오히려
동병상련의 정마저 느껴질 지경이었습니다. 어째서 앞부분만 읽다가 포기하고
팔았는지 이해가 가더군요.

아무래도 너무 번역이 엉망이라 몇천원 버린 셈(...) 쳐야 할 것 같습니다. orz

덧글

  • ㅇㅇ 2015/10/11 18:26 # 삭제 답글

    보통 교수는 이름만 달아놓고 아래의 학부생이나 석박사과정의 대학원생이 하는 경우도 많이 있고, 이러한 과정에서 번역이 엉망이 되는 과정도 있습니다. 진짜 해당 분야에 관심이 있다면 아마 대부분의 경우는 항상 원서도 고려에 넣으셔야 할 겁니다. 한국의 번역에 대한 인식도 그렇고 내용물도 엉망인 경우가 많아서...
  • ... 2015/10/11 22:19 # 삭제 답글

    번역은 무엇보다 국어를 잘 해야죠. 해당분야 지식은 물론이고..
  • 푸른별 2015/10/11 23:11 # 답글

    저는 중문학 전공했지만, 학부 때 전공이 너무 재미없었는데
    그 원인 중에는 번역이 너무 엉망인 탓도 있다고 봅니다.

    중국 고전이 과목 중 대다수인데, 지나친 직역 위주로 고리타분하게 번역된 게 많아
    졸업 후 번역 일을 하면서 깨달았죠. 원문보다 번역이 문제였구나..
    프로이트도 원문은 비교적 읽기 쉬운데, 번역되면서 난해해졌다는 썰도 있으니
    번역의 문제는 정말.. 한숨만 나오는 것 같습니다.
  • 부쿠부쿠 2015/10/13 03:05 # 삭제 답글

    읽었지만 뇌가 처리를 못하는 그것이 바로 마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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